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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개혁에 승부 거는

파나소닉 일본 가전 산업


인용 글. LG경영연구원 배 은 준



파나소닉이 일본 가전 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유통 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창업 105년차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은 다른 기업들과 어떻게 다른지, 여기에 담긴 파나소닉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최근 기업에서 언급되는 유통 전략은 대부분 ‘온라인 채널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자체 D2C(Direct to Consumer) 유통 채널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등에 초점을 맞 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로나 사태로 오프라인 매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 서 온라인 유통이 크게 주목받았고, 코로나 이후에는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이 다시 금 부각되면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옴니 채널(Omni-channel)’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등 최근 3~4년간 유통 기반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도 최근 ‘유통 개혁’을 일본 가전 사업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 만 다른 기업들이 이야기하는 온라인, 오프라인, 옴니 채널과 같은 용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가격’이라는 용어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고, 유통 자체보다는 개발과 SCM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기업들이 말하는 유통 전략과 는 사뭇 다르다.


창업 105년차 파나소닉이 추진하는 유통 개혁은 다른 기업들과 어떻게 다른지, 여기 에 담긴 파나소닉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일본 가전 사업 ‘유통 개혁’ 단행 2022년 6월 파나소닉은 일본 가전 사업의 ‘유통 개혁’을 선언했다.


1 유통 업체가 부담 하던 재고 위험과 비용을 파나소닉이 부담하는 대신, 유통이 행사해온 가격 결정권을 회수한다는 내용이다. 1991년 일본 반독점법이 시행된 이후 30년만에 처음으로 제조 사가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파나소닉과 같이 업력이 오래된 대기업, 특히 시장 1등 기업2 이 스스로 안정적인 현 재 사업방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칫 자신이 보유한 1등 사업기반을 흔들게 되고, 경쟁사들이 파고들 여지를 주는 위험한 결정일 수 있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나소닉이 ‘유통 개혁’을 추진하 게 된 배경에는 유통 기업이 주도하는 대규모 할인이 불필요한 모 델 개발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경쟁력 하락과 할인으로 이어지 는 ‘악순환’이 있다.


30%에 달하는 과도한 연말 할인으로 인해 수 익성이 하락하고, 제품 수명주기(PLC, Product Life Cycle)3 가 단 축되어, 불가피하게 기능과 성능에 큰 차이가 없는 이른바 연식 변경 모델을 개발/출시하게 되는 악순환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유통 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1 이번 ‘유통 개혁’은 일본에서 판매되는 가전을 대상으로 하며, 소물, 세탁기를 시작으로 적용 제품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파나소 닉의 Lifestyle 사업군은 가전, HVAC(Heating, Ventilation, and Air Conditioning), 조명 등으로 구성되며, 이 중 가전 사업은 세탁기,냉장고, TV, 소물(드라이어, 면도기 등) 등의 제품으로 구성) 2 2022년 일본 가전 시장 내 파나소닉 점유율 28% (파나소닉 IR 자료, 2022년 6월 3 제품 출시 시점부터 단종 시점까지의 기간 4 아사히 신문, 2023년 5월 1일


“현재 제품 개발은 Minor Change에 주력하고 있다. 소비자 아닌 구매자를 지향하 고, 가치 창출이 아니라 판매 가격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는 2~3년 동 안 기술을 쌓아 제대로 된 혁신 제품을 출시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고, 기능을 추가 하는 더하기 발상보다 빼기 발상이 필요하다.” - Panasonic Corporation CEO 시나다 마사히로(品田 正弘) 사장 -


파나소닉이 유통 개혁을 추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 진입 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얼은 2012년 산요 백색가전 사업, 메이디는 2016년 도시바 백색가전 사업, 하이센스는 2017년 도시바 TV 사업을 인수하며 이미 일본 시장에 진입했다. 외국 기업에게 좀처럼 성장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던 일본 시장이 중국 기업에게 문을 열어준 것이다.


중국 기업의 일본 시장 진입 성과는 TV 시장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일본 TV 시장 점유율 순위는 1위 도시바(25.1%), 2위 샤프(22.3%), 3위 소니(13.9%), 4위 하이센스(13.4%), 5위 파나소닉(10.0%) 등이다.


4 하이센스 가 도시바를 인수했으니, 사실상 하이센스가 점유율 38.5%로 1위인 셈이다. 파나소닉은 2021년 14.5% 점유율 로 4위였으나, 2022년 점유율은 10%로 두 자리 점유율을 간신히 유지했고, 순위는 5위로 한 계단 밀려났다.


수년간 20%대 점유율로 2위를 수성해온 파나소닉에게는 충격적 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일본 TV 시장 공략에 성공한 하이센스는 2021년 도쿄에 백색가전 연구소를 설립하고, 일본 세탁기, 에어컨 시장 공략을 본격화한다 는 계획이다.


이미 산요와 도시바 백색가전을 인수해 일본 시장에 진입한 하이얼, 메 이디에 이어 하이센스까지 일본 가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면서 파나소닉의 TV 트라 우마가 가전까지 확장되었고,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통 개혁’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고정 가격’이 핵심 전략


파나소닉이 유통 개혁을 통해 확보한 가격 결정권을 기반으로 추진한 첫 번째 작업은 ‘지정 가격제’를 도입한 것이다. 경쟁 압력과 유통 업체의 니즈에 따른 과도한 할인을 지양하고, 파나소닉이 설정한 가격대로 판매하도록 한 것인데, 그 내용을 자세히 보 면 할인을 최소화하고, 제품 수명주기 전반에 걸쳐 정가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고정 가격(Flat Price)’이 핵심 전략이다.


고정 가격을 통해 파나소닉이 기대하는 첫 번째 효과는 ‘가격 경쟁 력’ 제고다. 할인 효과를 미리 반영하여 출시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 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전체 제품 수명주기 기 간 수익을 예상해서 보다 낮은 출시 가격을 설정할 수도 있다.


높은 출시 가격을 설정한 후 할인을 통해 판매를 촉진하는 기존 사업방식 을 버리고, 할인 없는 낮은 출시 가격을 설정함으로써 중국 기업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파나소닉이 기대하는 고정 가격의 두 번째 효과는 ‘제품 수명주기(PLC, Product Life Cycle) 연장’이다. 제품 수명주기가 1년에 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연말에 물량 털어내기식 대규모 할인을 하기 때문이다.


할인 이후에는 원래 가격을 회복하기 어렵 고, 더이상 기존 모델로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기존 모델을 단종하고, 새 로운 모델을 출시하게 되는 것이다. 제품이 단명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제품 개발이 Minor Change, 즉 기능과 성능의 의 미 있는 개선이 없는 이른바 연식 변경 모델을 개발하는 데 자원을 투입하기 때문이 다.


혁신 없는 제품이어서 단명하고, 제품 수명주기가 짧으니 개발에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해 혁신 없는 제품이 출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이다. 이런 악순환을 탈피하기 위한 파나소닉의 선택은 제품 수명주기를 기존 1년에서 2~3년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할인 없는 고정 가격 전 략을 도입하고, 제품 개발 초점도 혁신적인 기능과 성능을 개발하 는 데 맞춘다는 계획이다. 고정 가격을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와 제품 수명주기 연장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정 모델이 롱런(Long Run)하기 위해서는 출 시 초기부터 의미 있는 매출과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 시 초기에 성과를 거두지 못한 모델은 충분한 마케팅/프로모션 자원 을 확보하기 어렵고, 깐깐한 성과 모니터링 대상이 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롱런에 성공하기 어렵다.


고정 가격 전략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소비자들이 할 인을 기다리며 구매를 지연할 이유를 제거함으로써 출시 초기 판 매를 강화하게 된다. 할인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일찍 구매해서 사용가치를 얻는 게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시 초기 판매가 확대되면 매출이 느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부 품 구매에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창출되어 수익 개선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파나소닉은 고정 가격 효과를 가격 경쟁력 제고, 제품 수명주기 연장에 그치지 않고, ‘개발 체제 혁신’까지 이어간다는 복안이다.


제품 수명주기가 늘어나면서 불필요한 연식 변경 모델 개발에 투 입되던 개발 자원을 혁신 기능/성능 개발 및 신제품 개발에 투입 하는 방식으로 개발 초점을 이동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초기 사례 가 나타나고 있다. 파나소닉의 고정 가격 전략이 적용되어 식기세 척기와 전자레인지의 제품 수명주기는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 고, 여기서 확보된 개발 자원을 투입하여 ‘물탱크식 슬림 식기세척 기’, ‘자동 계량 압력밥솥’이라는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혁신 포인트는 파나소닉이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구 조를 통해 얻어진 실제 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SCM을 최적화’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판매 예측치 기반 생산 및 재고 관리를 벗어나 실제 판매량에 기반한 관리를 통해 납기 단축, 재고 회전율 등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드럼 세탁기에 적용하여 신속한 납기를 유지하면서 재고를 감축할 수 있음을 확인했 고, 올해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에 확대 적용해 향후 3년간 현금흐름을 100억엔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 지속될 수 있을까?


파나소닉이 추진하고 있는 ‘유통 개혁’은 분명 과감하고 혁신적인 시도지만, 시장의 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파나소닉 일본 가전 사업의 매출과 이익이 유통 개혁 이후 오히려 하락했기 때문이다. 파나소닉 일본 가전 사업 매출액은 2020년 3,787억 엔에서 2021년 4,123억엔으로 8.9% 성장했으나, 유통 개혁을 본격 추진한 2022년 에는 3,963억엔으로 ∆3.9% 하락했다.



일본 가전 사업 EBITDA도 2020년 494억엔 (13%)에서, 2021년 524억엔(12.7%)으로 증가했으나, 유통 개혁이 추진된 2022년 450억엔(11.4%)으로 ∆74억엔 감소했다.


유통 개혁을 본격 추진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숫자로 나타나는 사업성과 개선 효과는 찾 아보기 어렵다. 파나소닉은 2022년 유통 개혁으로 약 100억엔 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일본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속해오던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점유율이 2022 년 2위로 떨어지면서 시장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통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지속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이 일회성 시도로 끝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본 가전사업은 2022년 파나소 닉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제시한 7대 육성사업 중 하나이고, 직접 판매와 지정 가격제 등은 현재 Panasonic Corporation CEO인 시나다 마사히로(品田正弘)가 가 전사업부장 시절부터 파일럿 테스트를 추진해온 전략으로, CEO가 된 지금은 시나다 마사히로의 B2C 사업 비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파나소닉은 유통 개혁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1년 일본 백색가전 매출의 15%, 2022년 30%가 유통 개혁을 통한 ‘지정 가격제’ 로 창출되었고, 올해는 50%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연 파나소닉이 유통 개혁을 통해 할인 없이도 매출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인지, SCM 과 재고 관리에서 목표한 비용 절감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다. 더 나아가 기술 변화가 비교적 느린 백색가전을 넘어서 기술 변화가 빠른 제품군에도 유통 개혁을 적용할 수 있을지, 높은 점유율과 생산지 등 사업 기반이 탄탄한 일본을 벗어나 해외 시장에서도 이러한 전략을 확대할 수 있을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 시도에 주목하는 이유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에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변화의 기회를 놓치기 전에 ‘스스로, 선제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사업에 이슈가 생기기 시작 하면 제품 라인업을 바꾸고, 새로운 조직 책임자를 임명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사업모델을 바꾸는 시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 이런 수순을 따르다 보면 시장 기반이나 조직 체력이 부실해져 새로운 시도를 추진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측면에서 파나소닉이 TV 사업의 위기를 일본 가전 사업 전체를 변화시키는 계 기로 삼은 점은 인상적이다. 유통 개혁과 같이 자사의 변화뿐만 아니라, 유통 기업의 변화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전략은 시장 1등 지위를 가진 기업이 아니고서는 추진하 기 어렵다.


만약 파나소닉이 시장 점유율 10%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TV 사업에서 유통 개혁을 시도했다면 시장의 관심을 끄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파나소닉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100년이 넘은 대기업의 ‘Legacy 극복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다.


오랜 업력과 글로벌 사업규 모를 가진 기업은 기존 유통 기반과 사업방식, 조직구조 등이 새로운 사업방식을 추 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런 이유로 스마트폰, 전기차 등에서 다수 신생 기업 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에도 기존 대형 기업들이 신생기업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과 감하게 추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나소닉의 유통 개혁은 오랜 업력과 사업규모를 가진 대기업이 추진하는 새로운 시 도일 뿐만 아니라, 우리와 유사한 제품과 사업구조를 가진 경쟁 기업의 사례라는 점 에서 그 추진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나소닉 유통 개혁의 성공 여부보 다는 그 이면에서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주목할 때 보 다 의미 있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파나소닉의 새로운 시도를 계기 삼아 유통 전략 변화를 통한 사업 개선 기회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통을 통해 사업을 개선하고, 혁신하려는 기업은 비단 파나소닉만이 아니다. 샤오미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으로 무명 기업에서 세계 3위의 스마트폰 기업이 되었고, 테슬라는 전통적인 딜러 판매가 아닌 온-오프라인 D2C(Direct to Consumer)를 통해 대형 OEM들이 벤치마킹하는 혁신 기업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당일 배송 등 새로운 유통 인프라가 갖춰지고 있고, 소비자들도 새로운 유통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통을 축으로 하는 다양한 기회를 모 색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통은 Cost 혁신, 고객접점 확보, 새로운 사업모델등 다양한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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